이달의 의료진

국내 신생아스크리닝검사와 유전대사질환 관련 권위자, 이정호 소아청소년과 교수


국내 신생아스크리닝검사와 유전대사질환 관련 권위자, 

이정호 소아청소년과 교수


신생아 선별 검사 선구자적 역할…유전 검사 확대 앞장




현재 저출산으로 인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선택하는 의학도는 5분의 1로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신생아와 아이들을 위해 묵묵히 연구하고 진료하고 있다. 특히 신생아 검사는 성인이 될 아기들의 미래를 좌우한다.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는 1985년 처음으로 신생아 선별검사를 도입해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 중심에는 신생아스크리닝검사와 유전대사질환 관련 권위자로 꼽히는 이정호 교수가 있다.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난 이정호 교수는 7살 때 엄마, 아빠를 따라 서울로 이사를 왔다. 처음에는 어린 시절 입에 배었던 사투리가 심해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마치 이방인 같이 느낀 적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서울에서 보내면서 처음의 이방인 같았던 느낌은 사라지고 많은 친구들과 서울 생활에 적응했다. 지금은 그때의 경상도 사투리도 거의 사라졌다. 처음부터 의사가 꿈은 아니었다.



“저는 처음 우주항공 관련 일을 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원하려던 학교의 그 학과가 없어졌어요. 그럼 어디를 가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차선책이 의대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의대 생활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던 같습니다.” 차선책의 학과이기는 했지만, 유급이나 시련 없이 나름 학창시절을 잘 보냈다. 의약분업을 반대하는 학생운동도 해보고 학생운동 하러 가는 척하고 미팅도 하며 평범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 소아과 실습을 할 때는 아이들을 위해 당시 가장 인기 많았던 만화 피카추의 캐릭터를 모두 외우기도 했다. 어쩌면 이때가 소아청소년과와 인연을 맺게 해준 첫 경험이었다. “학창 시절 여러 추억이 있습니다. 의약분업, 의료수가 정상화 등을 위해 의대생으로서 투쟁하기도 했지만 이를 관철시키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막상 어떤 과를 가고 싶고 어떤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능동적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서울병원 소아과 실습을 돌면서 처음 소아과전문의가 멋있다고 느꼈다. 당시에는 소아과가 인기가 많았다. “당시 소아과에 너무나 존경스러운 교수님들이 많았습니다. 경쟁률도 높아서 공부 잘하는 여자 의대생들은 거의 소아과를 가려고 경쟁할 정도였거든요.”



인턴 시절 경험으로 소아청소년과를 선택

이 교수는 인턴 시절을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에서 보냈다. 주변에 천안병원만큼 큰 병원이 없다 보니 보령, 홍성, 예산 등 주변 지역 응급 소아 환자는 다 천안병원을 찾았다.

“당시 소아 응급환자들을 많이 봤습니다. 소아과가 그저 감기 환자, 배탈 환자를 보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응급 CPR을 해야 하는 소아 환자들을 보면서 소아과가 단순히 내과의 축소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거죠.” 전공의 시절 보았던 난치성 뇌전증 소아환자는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머니가 한의원에 가서 약을 지어 먹였는데, 그게 중국 명산의 돌을 갈아 먹인 거더라고요. 결국, 그 환자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본인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아이들에게도 생존권이 있는 것이잖아요.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던 기억입니다”


군시절은 전라남도 담양에서 공중보건의사로 지냈다. 당시 담양의 총인구가 5만명 이었지만 소아과전문의는 이 교수 단 한명뿐이었다. 그리고 소아환자의 약 80%는 다문화가정이었다. “엄마가 주로 동남아인 이다 보니 한국어가 서툴고 당연히 아이들 역시 언어발달이 많이 느렸습니다. 학습능력은 떨어지고 발달장애와 같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들의 뇌와 관련된 분야에 관심이 높아진 거 같아요.” 이때부터 다른 유전자를 가진 특수한 소아환자에 대한 연구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뇌 분야의 경우 성인은 내과가 아닌 신경과가 따로 있지만 소아과에는 소아신경과가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에 대해 더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신생아 스크리닝 검사의 선구자를 만나다

3년의 군 복무를 마치고 뇌 신경 분야 공부에 뛰어들었다. 이를 위해 교수님들께 부탁해 추천을 받아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소아신경 전임강사로 2년을 근무했다. 그때 당시 도입 초기였던 유전자 검사 등도 접할 수 있었다. “이 분야에 대해 서울대 채종희 교수님한테 배우면서 신경질환 환자, 유전자질환 환자, 특히 희귀질환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것같습니다.” 이 교수는 2년간의 소중한 경험 후 2013년 다시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에 복귀했다. 당시 서울병원에는 신생아 선별 검사의 선구자인 이동환 교수가 있었다. 이동환 교수의 가르침을 통해 현재 이 교수가 하는 성장_성조숙증 클리닉과 유전·유전체/대사질환 클리닉 분야 등의 연구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이후 이동환 교수와 함께 이 교수는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이 현재 신생아 선별검사 분야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나라는 이동환 교수가 일본 연수 후 1985년 순천향대 서울병원에 처음 도입해 페닐케톤뇨증과 선천성갑상선기능저하증에 대한 검사를 저소득층 산모를 대상으로 처음 시작했다. 이후 1991년 경기도 시범사업을 거쳐 1997년부터 모든 신생아를 대상으로 국가지원으로 검사하게 됐다. “2006년부터 6가지 질환에 대한 신생아 선별검사가 진행됐습니다. 당시에는 검사율이 50%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우리 서울병원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거의 100%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교수는 대한의학유전학회 등과 함께 신생아 선별검사의 중요성과 검사 범위 확대를 위해 노력해 왔다. 노력의 결과 2018년부터는 50여 가지 질환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교수와 서울병원은 끊임없는 정부 관련 부처를 상대로 한 노력으로 올해 1월 1일부터는 치료가 가능한 리소좀 축적 질환 6가지도 보험 급여가 가능하도록 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신생아 유전자 이상 치료 최고 권위자로

이 교수와 서울병원의 이런 노력은 선별검사를 통해 조기 발견한 환자들은 선별검사 이전 늦게 치료받은 환자들이 가지는 발달지연, 지적장애, 경련 등의 증상이 현저하게 줄일 수 있었다. 또한, 국민 건강 증진과 더불어 희귀질환에 대한 국가적인 예산도 줄어드는 효과를 보고 있다. 현재 이 교수는 대한의학유전학회에서 인증하는 임상유전학인증의로서 환자들에게 정확한 유전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교수가 이끄는 서울병원 유전·유전체/대사질환 클리닉은 국내 신생아선별검사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진단 및 치료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치료제는 물론, 유전·유전체 분석이 가능한 NGS장비와 시설도 잘 갖추고 있다. “선별검사는 말 그대로 확진 검사가 아니어서 이상소견이 나왔다고 바로 환자로 진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검사 및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하며, 해당 분야 전문가 진료가 꼭 필요하거든요. 또한, 대부분 대사질환은 유전자 이상이 원인인 만큼 가족 상담도 필수적입니다.”


이 교수는 국내에서 이러한 신생아 조기 진단과 치료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하려 노력 중이다. 향후에는 더 나아가 유전자 검사까지 확대토록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질병관리청 산하에 질병관련 정보와 치료 관련 케이스 등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이런 것이 없거든요. 이런 커뮤니티의 필요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 교수는 논문 발표, 언론과 방송 인터뷰 등을 더욱 늘려 외부에 알리고 있다. 정부 부처에 공문을 보내는 한편 법 개정을 위해 국회의원 보좌관실과도 소통하고 있다. 올해에는 국정감사 때 강기정 국민의 힘 의원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었다. “저희는 이제 유전자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정부 당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신생아 유전자 검사를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영국의 경우 2021년 이후 태어난 모든 신생아들은 의무적으로 100% 유전검사를 하도록 했습니다. 아마도 5~10년 안에는 신생아 선별검사도 유전자 검사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유전상담사 역할론 강조…상담소 신설돼야

이 교수가 유전검사의 중요성과 함께 유전상담사의 역할론도 강조하고 있다. 맞춤 의료와 정밀의료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유전자 치료가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유전상담사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매해 유전자 검사에 대한 환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유전자 검사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으며 잘못 이용되면 상업적으로 악용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유전상담사를 통해 체계적인 관리가 중요합니다.” 이 교수는 현재 울산대학교 유전상담사 대학원 과정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대한의학유전학회에서도 유전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진료가 많은 날에는 20~30분 유전상담을 해드리기는 쉽지 않지만, 오늘처럼 진료가 없는 날에는 유전상담을 해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검사 가격이 싸지면 더 많은 분이 혜택을 볼 것으로 생각합니다. 유전상담사 전문인력 양성과 함께 저희 역시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 중입니다.”


순천향의 선구자적 역할에 자부심


현재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의 수는 매년 줄어 최근에는 과거에 비해 5분의 1로 줄어든 상태다. “신생아들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으며 반면 의사로서의 책임은 더욱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에 대한 병원 또는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정지를 뜻하는 코드블루 상황에서는 모든 의사가 달려가 CPR을 해야 하지만, 신생아가 심정지 상태일 때는 코드블루를 작동하지 않습니다. 신생아를 CPR 할 수 있는 의사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전문영역으로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전자 치료가 활성화될 경우 오히려 소아청소년과를 찾는 이들은 늘어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순천향대학교 출신답게 순천향에 대한 자부심도 내비쳤다. “저에게 이동환 교수님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외에도 모든 훌륭한 선배 교수님들이 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순천향은 1974년도 국내 1호 의료법인으로 개원했고, 1985년에 국내 최초로 모자보건센터를 건립했습니다. 또한, 유전자 검사를 1990년도 초부터 시행했다는 점은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저희 소아청소년과의 유전자 대사질환, 신생아 선별검사와 치료 등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국내 질환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흔치 않은 해외 질환에 관한 연구와 이해가 높아져야 할 것”이라며 “다른 나라와 다른 인종별 유전질환에 관한 연구에 더욱 힘을 쏟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