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의료진

두경부암 분야 최고 권위자, 변형권 이비인후과 교수


두경부암 분야 최고 권위자, 변형권 이비인후과 교수




이비인후과는 귀, 코, 목, 머리, 구강, 침샘, 기관, 식도, 갑상선 등의 기관에서 발생하는 각종 다양한 질환을 다루는 분야다. 흔히들 가벼운 질환을 주로 다룰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길게는 10시간이 훌쩍 넘는 대형 수술도 많다. 특히 뇌와 눈을 제외한 머리부터 목까지의 모든 질병을 다루는 두경부(인후두부, 성대, 구강, 침샘, 목, 갑상선)의 경우 수많은 암이 존재한다. 서울병원이비인후과에는 이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변형권 교수가 새로운 리더로 과를 이끌고 있다.


변형권 교수는 학창시절 대부분을 영국에서 보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잠시 한국에서 생활한 기간을 빼곤 6년 반 가량을 영국에서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장래의 꿈은 줄곧 의사였다. “친척 중에 의사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막연히 ‘나도 언젠가는 의사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릴 때 몸이 약해서 병원신세를 많이 졌었는데 대형병원의 제 담당의 교수님의 인상적인 모습을 보며 훌륭한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영국에서 의대에 진학하는 것과 한국으로 귀국해 의대에 진학하는 것을 두고 갈등하기도 했지만 결국 한국에서 꿈을 이루기로 결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서 의사로 생활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사실 영국의 경우 의료체계가 미국보다는 썩 좋지는 않거든요. 외국생활의 어려운 부분도 고려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의사가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고교 2학년 때 부모님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변 교수는 이듬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여느 의대생들과 마찬가지로 예과 2학년 때까지는 정신없이 놀기도 했다. 틈틈이 풍물패, 의료봉사, 테니스 등 동아리 활동도 하며 대학생활의 낭만을 즐겼다. 하지만 본과 1학년이 되자 상황은 너무도 달랐다. “마치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촌과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함께 밤새 놀던 친구들이 이제 다 경쟁자가 되고 4학년까지 끊임없고 치열한 경쟁과 시험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 시험하나 소홀할 수 없거든요. 결국 순위가 매겨지고 이는 미래를 결정하게 되니까요.”하나의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또 다른 시험의 연속이었다. 또한 난생 처음 경험한 해부학 실습은 한동안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처음 사체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거무스름한 색으로 변한 사체와 실습실에 가득한 매캐한 방부제 냄새는 지금도 잘 잊혀지지 않네요.” 현재 두경부 전문의인 변 교수는 수많은 수술을 담당하기에 지금도 가끔 해부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의대시절 해부실습 할 때와 지금은 바로 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죠. 지금은 환자를 직접 치료해야 하는 의사의 관점에서 보니까요.”




두경부암, 장시간 소요되는 세밀한 수술 많아

변 교수가 처음 관심을 가졌던 과는 내과, 소아과, 정신과, 이비인후과 정도였다. 인턴 실습과정을 거쳐 최종 이비인후과를 선택했다. 이비인후과의 경우 내과적 질환, 수술을 요하는 외과적 질환이 다 있으면서도 다양한 진료가 가능해 매력적이었습니다.”

이비인후과에 매력을 느꼈지만 한 가지 걸리는 부분도 있었다. 위계질서가 가장 엄격한 걸로 악명 높은 곳은 이비인후과였기 때문이다. “엄한 선배들이 많아 솔직히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1년간 엄격하고 힘든 시간을 버텨냈더니 그만큼 선배들이 인정해주더라고요.” 변 교수는 귀를 보는 ‘이과’, 코를 보는 ‘비과’, 구강, 인후두와 목을 보는 ‘두경부’ 중 두경부 분야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다. 두경부 외과 전문의가 된 변 교수는 자연스레 많은 수술을 담당해야 했다. 수많은 종류의 두경부암 수술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두경부암은 구강, 인두, 후두, 침샘, 갑상선 등에 발생하는 암이다. 눈과 머리를 제외한 얼굴과 목 부위에 생긴다. “까닥 실수를 하거나 조금이라도 마음을 안일하게 가지면 자그마한 실수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습니다.

 
두경부암의 경우 특히 세밀함이 요구되기에 한순간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습니다. 힘든 수술이 많지만 그만큼 큰 보람도 느낍니다.” 이비인후과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의 메이저과와 달리 마이너과로 분리된다. 하지만 이비인후과의 두경부암 수술은 여느 메이저과 수술과 비교해도 힘들고 어려운 수술이 많다. “두경부는 환자의 호흡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됩니다. 1분 남짓의 호흡 문제로 환자의 생명이 좌지우지되거든요. 두경부에 대해서 많이들 생소해 하지만 어떤 분야보다도 중요하고 힘든 분야입니다. 수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수술은 아침 7시에 시작해 그날 저녁 7시에 끝난다. 큰 수술의 경우 새벽 2~3시가 되어서 끝나기도 한다. “치아 아래 턱뼈를 절골해 양쪽으로 벌려서 진행되는 수술, 턱뼈 자체를 통째로 떼어내야 하는 수술도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그런 수술한다고 하면 잘 상상을 하지 못합니다.”


다양한 두경부암에 로봇수술 기법 개발, 적용

두경부암의 경우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가장 많은 케이스 중 하나는 갑상선암이며 이외에도 후두암, 구강암, 편도암, 인두암, 설암 등이 대표적이다. 그만큼 수술법도 다양하다. 변 교수는 두경부암에 로봇수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로봇수술은 처음에는 복강경 수술과 같이 복강내 수술을 위해 고안된 수술인데 이를 두경부외과 영역에 적용하게 되었다. 편도암, 설기저부암, 후두암, 하인두암 등에 경구강 로봇 수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두경부암은 얼굴과 목에 절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술 후 먹고 말하고 숨 쉬는 기능적 보존면과 미용적 회복 문제 등의 후유증을 동반했었습니다. 그러나 경구강 로봇수술로 과거 접근이 어려웠던 목 안 깊숙이 위치한 종양이나 암을 제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에 흉터가 남던 과거 수술과는 달리 귓바퀴 뒤 절개를 이용하는 ‘로봇갑상선 절제술’, ‘로봇경부종양 절제술’ 등으로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있다. 두경부외과 영역의 로봇수술은 처음에는 미국에서 경구강 로봇수술법이 개발되었지만, 로봇경부수술은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개발된 새로운 수술기법으로 오히려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에 기술을 역수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쉼 없는 연구활동으로 신진연구과제 선정

연구활동도 주목받고 있다. 변 교수의 이런 연구활동을 인정받아 지난 2020년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기초연구사업 신진연구과제로 최종 선정됐다. 변 교수의 과제는 ‘EGFR-Wnt-FAO 상호기전 연구를 통한 암세포의 원격전이 선제적 제어기술 개발’이다. 


“이 기술은 난치성 두경부암의 재발 및 원격전이를 보다 더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치료 전략입니다. 이 연구개발을 통해 치료가 어려웠던 두경부암의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갑상선암 중에서 가장 난치성인 ‘갑상선 역형성암’ 치료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 평균 생존 기간이 진단 후 6개월 이내일 정도로 무서운 암이다. 또한 분자 표적 치료 약물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암 대사와 관련된 연구입니다. 쉽게 말해서 암세포를 직접적으로 죽이는 약물이 아닌, 암의 먹거리를 없애 굶어 죽게 하는 약물입니다. 최근 암 대사 부분이 많이 각광받고 있거든요.” 이밖에도 항암 방사선 치료 후유증을 줄일 수 있는 의료기기 연구를 의료기기 업체와 협업해 진행했다. 연구결과 의미 있는 성과를 얻어 후속과제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비인후과 수장으로 병원 발전에 기여

변 교수는 올해 3월 이비인후과 과장으로 선임됐다. 앞으로 서울병원 이비인후과를 이끌어 갈 수장으로서의 임무를 맡았다. “다소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인적이나 물적으로 보완해 가면서 병원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나 자신의 명예를 위한 이기적인 연구가 아닌 실질적으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 활동에 더욱 힘쓸 생각입니다.” 변 교수는 의대시절 의료봉사 동아리를 했던 것처럼 요즘에는 해외 의료봉사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서울병원 국제협력팀을 통해 몽골 의료진에 대한 강의, 수술 등의 교육을 진행했으며 9월 중순에는 몽골 시민들에 대한 순수한 치료 목적의 의료봉사를 계획하고 있다. 변 교수는 “가끔 어린 아들에게서도 배울 점을 엿보며 환자에게 진정 필요한 의사인지 되돌아 보게 된다”며 “여러 선배와 스승들의 장점들을 하나둘씩 되새기며 병원과 환자 모두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의사가 되고자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후배들이 이비인후과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과감히 도전해 큰 성취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