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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 산다는 것, 환자와 소통하는 기쁨입니다" 이성진 안과교수

순천향대 서울병원 이성진 안과 교수

"의사로 산다는 것, 환자와 소통하는 기쁨입니다"



의사의 목소리에 유독 의존하는 환자들이 있다. 의사의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없거나 전혀 볼 수 없는 안(眼)환자들이다. 그래서 안과 전문의는 더 친절하고 더 잘 소통해야 한다고 말하는 안과 전문의가 이성진 부원장이다. 낮에는 환자들에게 의학용어를 쓰지 않는 '쉬운 의사', 밤에는 망막 전문 이야기꾼 칼럼니스트, 한밤중에도 수술하는 안과의사, 또 어느 땐 사비까지 털어 환자들을 초청해 콘서트를 여는 '낭만닥터'. 세상에서 가장 바쁜, 하지만 환자와 소통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기쁜 그를 만났다.

글/이승우 기자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 씨는 선천적인 시각장애가 아니었을 겁니다. 아마도 '초고도근시'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된 건 7세 이후로 추정됩니다."

엉뚱한 상상력이 발동해 그냥 한번 물어봤을 뿐인데 너무 진지하게 진단을 내리는 바람에 순간 빠져들었다. '심학규 씨'라고 해서 더 그랬는지 몰라도 그 심학규 씨가 실존 인물인 줄, 아니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인 줄 착각이 들 정도였다. '심학규 환자'의 주치의를 자처한 의사는 바로 이성진 순천향대 서울병원 안과 전문의이자 진료부원장이다.


■명의(名醫) 마다하는 통의(通醫)

기왕에 심학규 씨를 현실로 소환한 김에 이 부원장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초고도근시로 진단하는 근거는 결말에 가서 죽은 줄만 알았던 딸과 상봉하는 순간 놀라서 눈을 뜬 대목에서 찾을 수 있죠. 초고도근시는 눈알이 극도로 커지면서 렌즈를 통과한 빛이 망막에 상()을 맺지 못하는 상태가 돼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겁니다. 실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도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수술을 통해 렌즈를 제거하면 그만입니다. 아주 가끔은 수술하지 않고도 어떤 충격 때문에 렌즈가 저절로 눈 속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학규 씨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고 봅니다.”

하마터면 심학규 씨가 부원장님을 만났어야 했네요. 그랬으면 생때같은 딸이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지지 않았어도 됐을 것을하는 감탄이 터져나올 뻔했다. 이 부원장에게 치료를 받아 빛을 찾은 수많은 환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심학규 같은 고전 속 허구의 인물까지 자신 있게 진단할 수 있다면 명의(名醫)’라는 찬사가 전혀 아깝지 않다. 하지만 정작 이 부원장은 명의는 가당찮다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정녕 명의가 싫다면 다른 표현을 찾아야 한다. 명의 대신 통의(通醫)’는 어떨까. 어떤 환자와도 소통할 수 있는 의사 말이다.


■의학용어를 쓰지 않는 의사

이 부원장은 환자 앞에서 의학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의학용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전문성이 있는 게 아닙니다. 어려운 전문분야를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진짜 전문가 아닐까요? 의사가 무심코 의학용어를 쓰면 듣는 환자는 어려워하고 어려움은 곧 두려움이 되고 맙니다.”

<후생신보>에 칼럼으로 연재한 수백 편에 달하는 이성진의 망막이야기도 그런 쉬운 소통의 역작들이다. 비전문가들에게도 술술 읽힌다. “하루는 아이가 아빠는 어떤 의사냐고 물었는데, 설명하면 할수록 어려운 이야기가 되고 마는 것에 듣는 아이도, 말하는 저도 힘들더라고요. 어린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설명하는 기술을 쌓기 위해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12년간 칼럼을 연재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일대일상담을 위해 인터넷 사이트까지 개설했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co.kr’ 도메인까지 도입했을 정도다.


■망막 분야 최고 권위자

이 부원장은 황반변성과 망막박리 같은 망막질환에 정통한 안과 전문의다. 요즘은 백내장수술의 노하우를 쌓기 위해 망막 쪽에 지원하는 전공의가 많지만 이 부원장이 수련할 때만 해도 망막은 좀처럼 도전하지 않은 어려운 분야였다. 각막은 재수술의 기회가 있지만 망막은 실패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실명의 위험이 있다. 백내장수술이 맹장수술이라면 망막수술은 대장수술에 비견될 만큼 힘든 수술이다. 망막질환 중 특히, 황반변성은 난치 영역이어서 전문의가 부족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황반변성 환자는 갑자기 사물이 찌그러져 보이고 문장의 글자 중 보이지 않는 글자가 생기며 밝고 어두운 정도를 구분하는 능력도 점차 떨어지게 된다. 황반변성이 생기는 과정에 대해 이 부원장 특유의 쉬운설명을 들어보자.

눈을 카메라에 비유하면 눈 속에는 망막이라는 얇은 필름이 벽지처럼 발려 있습니다. 그 중심부에는 갈색소가 진하게 뭉쳐 있는데, 이곳이 사물의 초점이 맺히는 황색 반점이죠. 보는 것을 담당하는 시()세포가 있는 곳입니다. 그 아래서 반갑지 않은 혈관들이 웅크리고 있다가 서서히 망막을 뚫고 자라나와 출혈을 일으켜 황반부를 망가뜨리는 병이 바로 황반변성입니다.”


■황반변성의 합병증은 우울증

황반변성 환자는 점점 시력을 잃기 때문에 불안과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가족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준다는 미안함도 환자에게 죄책감을 갖게 한다. “황반변성은 언제 실명할지 모르고 언제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지 예측할 수 없어 환자들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어요. 시력은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불안과 우울증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삼출성 황반변성은 유리체강 내 주사같은 적극적인 치료를 시행해도 시력이 계속 조금씩 떨어지기 때문에 불안감으로 심각한 우울증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영국 킬(Keele)1차의료센터의 황반변성 환자에서 불안과 우울증 유병률연구를 보면, 황반변성 발병 후 불안감이 30.1% 증가했고 우울증도 44%나 늘었다. 연세대 간호대학원 연구에서도 황반변성의 평균불안점수는 혈액암이나 갑상선암보다 높았다.


■의사의 숙명 앞에서 찾은 소명

8년 전 황반변성 환우회가 이 부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이 부원장도 화답했다. 환자를 위로하고 두려움을 줄여주기 위해 자세한 설명과 용기를 북돋워주는 답변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부원장의 의사인생에 전기를 가져온 비극이 일어났다. 실명의 두려움으로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이어가던 한 황반변성 환자가 불안감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실명은 시력을 잃는 것 이상으로 끔찍한 일임을. 어떤 환자에겐 시력이 목숨 같은 것임을. 이 부원장은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분명히 다른 환자들한테 그랬던 것처럼 용기를 갖고 잘 치료해 보자고 했었다.

수술하면 나을 수 있으니 함께 최선을 다해 보자는 말 대신 “100% 완치될 수 있다고 말했어야 했나? 나의 장담이 만에 하나라도 실패할 경우 환자와 그 가족의 원망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내가 속한 병원의 입장과 법적 책임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100% 완치를 확신해도 환자와 가족에게 확신한다고 말할 수 없고, 1%의 가능성만 보여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의사다. 환자의 희망과 치료의 현실 사이에서 의사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의사의 숙명이기도 하다. 이 부원장은 그 숙명 앞에서 소명을 찾았다. 바로 소통이었다.


■ 병, 모르는 만큼 두렵다

모르는 게 약이고, 아는 것이 병이라지만, 이 부원장은 병은 잘 알아야 걸리지 않고 제대로 알아야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보이는 만큼만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입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지요. 알아야 고칠 수 있고 모르면 두려움만 커져 고칠 수 있는 병도 못 고친 채 마음의 병까지 키우게 되고 맙니다. 의사만 병을 공부해서는 안 됩니다. 환자도 함께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소통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 부원장의 말처럼 안과에 들어맞는 말도 없을 것이다.


■ 환자와 핫라인을 구축하다

일단 진료를 시작해 인연을 맺은 환자는 언제든 이 부원장과 연결되고 만날 수 있다. 이 부원장은 자신이 치료한 환자라면 누구든 이메일주소는 물론이고 휴대전화 번호까지 알려주며 조금이라도 병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거나 증상이 악화돼 걱정이 되면 낮이든 밤이든 망설이지 말고 연락하라고 주문한다. 대학병원이라 전문의를 다시 만나는 절차가 까다로울 거라 생각했던 환자들은 이런 핫라인(hotline)’을 개통한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망막박리수술도 이 부원장에게는 응급이다. 늦어도 24시간 내 수술이 원칙이다. 당장 생명이 위급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서둘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이 부원장의 생각은 다르다. “눈을 뜨고 있는데 검은 커튼이 서서히 내려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그야말로 암담한상황이죠. 그런 환자의 공포를 이해해야 합니다. 한시도 늦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부원장은 한밤중에도 수술을 집도하는 게 다반사가 됐다.


■'환자바라기' 의사의 '해바라기콘서트'

이 부원장은 노래는 물론이고 색소폰 연주 실력도 결혼식장에서 축하연주를 할 정도로 수준급이다. 이 부원장이 콘서트를 통해 황반변성 환자들과 소통하겠다고 맘먹는 데 이런 음악적 소양도 한몫했다. 2014년 황반변성 예방을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해바라기콘서트를 처음 열었다. 한국실명재단이 후원하고 썬플라워캠페인 운동본부가 주관했다. 콘서트명의 해바라기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황반, 즉 노란 점들이 박힌 망막의 모습이 흡사 해바라기 같기도 하고, 황반변성 환자들이 해바라기처럼 희망의 태양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의미도 있다.

황반변성은 노인성 실명 원인의 대표 질환으로 한 해 15만 명 넘게 환자가 발생하는데 그 수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황반변성으로 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잔혹한 현실 속에서 황반변성의 심각성을 알리고 실명하는 환자의 증가를 막고자 콘서트를 시작했어요.” 한두 곳에서 후원을 받긴 했지만 작지 않은 규모의 콘서트를 열기에는 예산이 턱없이 모자랐다. 이 부원장은 사비를 털고 옛 지도교수였던 은사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은사는 환자와 소통하려는 제자의 열정에 감복해 선뜻 거금을 건네주었다. 유명 가수들도 콘서트 취지에 공감해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 해바라기콘서트는 기대 이상이었다. 700여 명의 황반변성 환우가 참석해 서로 아픔과 고통을 공유하고 함께 투병의 의지를 북돋워 주었다. 이 부원장을 구심점으로 황반변성은 막연히 두려운 병이 아니라 함께 공부하고 싸워나가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병이라는 가능성을 연 것만으로도 첫 콘서트는 대성공이었다.


■궁금증이 사라질 때까지 끝장내 봅시다

2016년 열린 두 번째 해바라기콘서트에서는 환우들과 끝장토론을 벌였다.

녹초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환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 콘서트에서도 황반변성 환우와 후원인 500여 명을 비롯해 안과의료진, 유명인 등이 대거 참여했다. 누네안과병원 권오웅, 한양대 구리병원 조희윤, 고대 안산병원 김성우, 대구 누네안과 문다루치 등 안과 전문의들이 황반변성을 주제로 열띤 대화를 진행했다. 가수 신효범, 성악가 유성녀, 뮤지컬배우 박세욱, 바이올린니스트 백진주 , ‘여행스케치남준봉, 아이돌 보이그룹 하이포’, 아이돌 걸그룹 스쿨버스등이 참여하는 힐링콘서트도 이어졌다


■ 망막박리수술 1,000례 돌파

20186, 순천향대 서울병원 안과는 망막박리수술 1,000례 기념 강좌를 개최했다. 당시 이 부원장의 망막수술 스승인 세브란스 교수 출신의 권오웅 누네안과 병원장은 이성진 교수를 보면 처음 망막수술을 했을 때가 생각 난다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 망막박리수술 1,000례라는 큰 업적을 이뤘다. 한 사람이라도 더 잘 보게 하기 위한 노력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고 격려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은 1991년 온영훈 교수가 처음 망막진료를 시행한 이래 2001년부터 이 부원장이 24시간 내 응급 망막박리수술을 시작해 연간 30~40건을 집도해 왔다. 2010년부터는 연간 100건 이상의 수술을 하고 1주일에 두 번은 야간 응급수술도 이뤄진다. 망막클리닉은 현재 원스톱(One-stop)온콜(On-call) 시스템을 갖추고 24시간 응급수술을 시행한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오전 7시부터 망막진료를 시작해 젊은 직장인 환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인근 약국과 협의해 이른 시간에도 약을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 병원 차원에서도 망막진료와 망막박리 응급수술이 가능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부원장은 밤 늦은 퇴근과 새벽 출근을 마다하지 않는다.


■시공을 초월해 소통하는 명의

진료부원장은 올해 12일부로 승진한 자리다. 누구보다 환자들과 소통하는 이 부원장의 열정이 의료진 전체에 귀감이 될 것을 기대한 인사였으리라. 이 부원장은 베트남 꾸이년에 백내장수술센터를 건립하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네팔 등지로 매년 의료봉사도 다녀온다. 천 년 전 고전 속 인물을 진단하고 멀리 해외 환자들까지 돌보는, 그야말로 시공(時空)을 초월해 소통할 수 있는 통의 (通醫), 그가 바로 진정한 명의(名醫)가 아닐까.

이 부원장은 인터뷰 중 위급한 환자의 호출을 받고 즉시 자리를 떠났다. 남은 인터뷰는 전화로 하자 했지만 그는 끝내 전화를 하지 않았다. 환자와 소통하느라 인터뷰기사가 어떻게 나오는지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아프니까 환자이고 바쁘니까 의사다는 이 부원장을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다. 그를 다시 만나려면 이미 노안이 온 기자의 눈이 더 나빠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환자는 언제든 만나줄 테니. 올해 제3차 해바라기콘서트가 열린다고 하니 그곳에 가도 이 부원장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